황주리 : BOTANY
내 기억 속의 최초의 꽃의 이미지는 어릴 적 한옥 마루에 놓여있던 하얀 백합의 이미지다. 아니 뒷마당에 아무렇게나 피어있어 외로운 날 꽃술을 따서 빨아먹으면 단맛이 나던 사루비아 꽃이다. 아니 손톱에 붉은 물을 들이던 봉숭아꽃이다. 아니 화병 가득히 꽂혀있는 내가 날 때부터 벽에 걸려있던 그림 속의 장미꽃이다. 아니 크리스마스카드 속에 찍혀있던 포인센티아꽃이다. 아니 고흐의 그림 속의 노란 해바라기다. 아니 어른이 된 이후 지금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식물인 선인장이다.
해바라기를 처음 본 건 일본어로 된 고흐의 화집에서였다. 그래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꽃은 실제 해바라기가 아닌 그림 속의 해바라기다. 왜 나는 실제 꽃보다 그림 속의 꽃을 오래 기억하는 걸까? 그림 속의 꽃은 시들거나 죽지 않기 때문일까?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꽃,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꽃, 병문안을 갈 때 들고 가는 꽃, 우울한 날에 한 묶음 사서 화병에 꽂아놓는 꽃, 시들지도 죽지도 않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만든 꽃, 꽃은 아무래도 사랑과 생명의 상징일거다. 어쩌면 내 그림 속의 꽃은 시들지 않는 조화의 이미지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내게 꽃은 삭막한 현실에다 풀이나 강력 접착제로 정성껏 붙이고 싶은 꿈속의 벽지 같은 모양이다. 그 꿈속의 벽지가 바로 내가 그린 꽃그림이기도 하다.
꽃이면서 꽃이 아닌 꽃, 선인장은 모든 식물 중에서도 가장 사람을 닮은 식물이다. 사막에서도 살아가는 강인한 의지력과 끝없는 번식의 생명체, 나는 선인장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가시를 지니면서도 서로 상처주지 않고 공존하는 이상형의 세계를 꿈꾼다. 선인장 잎 하나의 방은 우리들 마음속의 방이다. 얽히고 섥혀 끝없이 뻗어나가는 그림, 식물학 연작은 기쁨과 슬픔, 일상과 축제, 삶과 죽음이 날실과 씨실로 직조된 우리들 삶의 타피스트리이다.
작가 황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