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미술관 개관기념전 : 권진규와 여인
권진규 미술관
호반의 도시 춘천에 박수근, 이중섭과 함께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적인 조각가, 권진규미술관이 개관했다. ‘권진규와 여인’은 개관 기념전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에서 함께했던 동료이자 연인 도모의 얼굴을 담아낸 석조 작품과 테라코타, 건칠로 된 여인상과 자소상 등 30여 점이 소개되고 있다.
테라코타 인물상은 그의 지인을 모델로 한 경우가 대부분으로, <지원의 얼굴>, <상경>, <순아> 등 대부분의 작품명이 모델의 이름 그대로이며, 제작된 지 40년 이상 지난 지금도 작품에서 모델의 특징을 쉽게 확인할 수 있어 사실주의 조각의 정수로 평가된다. 얼굴의 골격, 얼굴에 감도는 생기 등 모델의 이상적인 조형이 그대로 표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진규의 작업과정이 담긴 작업메모와 드로잉, 회화와 영상기록물들과 함께 구성된 이번 개관기념전을 통해 서양 근대 조각에 ‘전신사조’와 같은 동양 미학을 융합시켜 한국적 사실주의를 정립시키려 한 그의 정신과 업적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권진규 연보
1922년 4월 7일 함흥에서 부친 권정주와 모 조춘의 2남 4녀 중 차남으로 출생.
1932년 11세 상공회의소 주최 전시회에서 목조각 <사슴>으로 수상.
1938년 17세 춘천고등보통학교 입학.
1942년 21세 춘천중학교를 졸업 후 형 진원과 동경으로 가 사설 미술강습소를 다님.
1946년 25세 해방 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성북동에 정착.
1947년 26세 이쾌대가 운영하던 성북회화연구소에서 회화수업을 받다 김복진의 미완 속리산 법 주사 대불작업을 윤효중과 함께 참여 제작함.
1949년 형 진원이 세상을 떠나고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武藏野美術大 野美術大學에 입학하여 부르델의 제자 시미즈 다카시 淸水多嘉示 淸水多嘉示에게서 조소를 배움.
1952년 31세 일본 최고의 재야 공모전인 제37회 이과전 二科 展에 석조작품 <한낮의 꿈>으로 입상.
1953년 32세 무사시노 미술학교 졸업. 제38회 이과전에서 <기사>와 <말머리>로 특선을 수상. 동경, 오사카 , 후쿠오카 등지에서 작품활동을 전개.
1959년 38세 57년 부친의 별세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 동선동에 작업실을 마련함.
1965년 44세 첫 개인전을 서울신문회관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화랑 초대전으로 개최.
1966년 45세 6월 모친이 별세함. 홍대 조각과와 서울 공대 건축과에 재료학 강사로 출강.
1968년 47세 동경 니혼바시 日本橋 日本橋 화랑에서 제2회 개인전 개최. 여인흉상과 전신상 말을 소재 로한 작품 30점을 선보임.
1971년 50세 서울 명동화랑에서 제3회 개인전을 개관 1주년 기념 초대전으로 개최.
1973년 52세 <가사를 걸친 자소상>등 3점을 고려대학교에 기증. 5월 4일 오후 6시 동선동 작업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
1974년 제1주기 추모 유작전을 명동화랑에서 개최.
1988년 15주기 대규모 회고전을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하여 5만명의 관중이 다녀감.
1988년 가나아트센터 개관 기념전으로 25주기전 개최.
2003년 인사아트센터에서 30주기전 개최.
2009년 국립현대박물관, 무사시노대학, 그리고 도쿄근대미술관과 함께 권진규특별전을 개최.
2015년 12월 춘천 달아실 권진규미술관 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