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gwon Shin korea, b. 1972

고려청자, 조선백자와 같은 도자기는 만들어진 시대에는 실제로 사용하던 공예품이었으나 현재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전시되어 그 시대의 미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남아있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이 발달하면서 장인들이 수공으로 만들어 내던 도자기도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로얄 코펜하겐이나 웨지우드 같은 명품 자기들이 대중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는 이 자기들도 20세기 혹은 21세기를 대표하는 미술품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이번 작업은 우리 곁에서 변화를 거듭해 온 ”도자“와 ”기(器)“를 주제로 한다. 시대와 장소를 달리하며 발전해 온 다양한 기형들은 긴 끈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작업으로 연결되는데 이는 조선시대 주병인 ‘백자철화끈무늬병’의 철화장식 무늬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이다. 16세기 후반에 광주 관요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주병의 철화 그림은 장식적인 꾸밈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추상적이고 즉흥적이며 대담하다. 또한 주병을 묶어서 들고 다닐 수 있는 끈을 주병의 몸에 그려 넣음으로써 해학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번 작업에서 “끈”은 그림이 아닌 입체(혹은 부조)로 환원되어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 존재했던 도자의 기형과 장식을 한데 묶어준다. 나아가 “쓰임”으로서의 “기(器)”는 도자를 넘어 기형 그 자체에 대한 관심으로 진화하여 공장에서 대량생산 된 제품의 형태적 미에도 관심을 두게 되었다. 작업의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병”은 와인 병에서 차용한 형태인데 쓰임을 배제하고 바라봤을 때 조형적으로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되었다. 즉, 이번 작업은 고려나 조선시대 같이 먼 과거에 장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의 옛 도자기와 산업혁명 이후 대량생산이 가능해 진 유럽의 명품 도자기, 더 나아가 단순히 쓰임만을 위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기(器)에 이르기 까지 도자기(혹은 器)의 역사를 끈이라는 매개로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 

 

- 작가노트